“축하한다. 사랑해!” 아들을 출산한 며느리에게 꽃바구니를 선사한 지 벌써 40일째. 난산으로 힘들었던 것도 잊고. 끙끙거리며 아이를 돌보는 새내기 엄마의 모습을 보며. ‘나도 저랬겠지?’ 서투른 몸짓. 시원찮은 손놀림이 대견스럽기만 하다.
한 여름 작열하던 태양. 굽이치던 개울물. 요란스럽던 매미들의 합창도 어느 듯 사라지고 높아져 가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노라니 어느 듯 가을의 중심에 와있습니다. 소리 없이 다가온 가을은 온통 대지를 갈색 빛으로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누군가 시를 읽고 누군가 노래하고 풀벌레들도 따라 시를 읽고 노래하는 가을입니다.
대화의 필요를 넘어 지금 필요한 것은 대화의 방법이다. 대북 특사를 보내자는 주장도 있다. 특사는 대화의 형식이다. 대화의 내용은 무엇인가? 북한은 비핵화를 부정하고. 한·미 양국은 평화체제를 말하지 않는다.
봄에 씨를 뿌리고 무더운 여름동안에 흘린 땀에 대한 결실이 맺어지는 시절인 이 가을은 우리 모두에게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사람은 육체를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의식주의 문제를 포함해서 자신의 안전을 지키고 안정을 취하는 일에 가장 큰 관심을 보입니다.
지난 8월11일 광복68주년을 앞두고 성도들과 함께 예배드리면서 성경 시편 126편의 말씀을 함께 나누었다. 시편 126편은 나라를 잃어버리고 타국으로 이주하여 오랫동안 포로 생활하며 고통 당하다가 해방되어 고국으로 귀환하면서 부른 노래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유래 없는 폭염으로 온 국민이 더위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산업현장에서 사무실에서 더위와의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곳은 산 속이라 보편적으로 더위가 좀 덜한 편입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더위를 극복하며 에너지 절약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데 몇 가지를 소개할까 합니다.
얼마 전 TV토론 시간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야 하나?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야 하나?’라는 주제로 열띤 공방을 하는 모습을 관심 있게 지켜본 일이 있다. ‘사랑을 받는 자는 갑이요 사랑을 하는 자는 을’이라는 갑을 관계로부터 시작해서 ‘내가 사랑하는 것이 현실이고 내가 사랑받는 것은 이상’이라는 자조적인 주장을 하기도 했다.
여행의 계절입니다. 산천이 푸르른 계절을 맞아 계곡과 바다에는 수많은 피서객들이 날마다 붐비고 있습니다. 남들이 다들 떠나는 피서이니 당연히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왠지 마음이 다소 설레는 것은 감출 수 없습니다. 이 좋은 계절에 청정지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새삼 느끼면서도 몇 해 전에 다녀왔던 홍도여행이 떠올려졌습니다.
충남 태안군 안면읍 창기리 백사장 해수욕장 앞바다에서 실종된 고교생 5명은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 어른들의 돈벌이 욕심과 안전 불감증이 꽃다운 청소년들의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소서. 대서. 초복. 중복을 보내면서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에는 연일 폭우가 계속되고 있다. 수많은 농작물과 재산 피해뿐만 아니라 수십 미터 땅속에서 작업을 하던 인부들의 귀중한 생명이 희생되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우리 남부지방에서는 마른장마가 오래가면서 찌는 듯한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 사람의 사소한 잘못으로 인해서 건물에 오랫동안 비가 새어 건물에도 손상을 입힐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불편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 당시 공사를 담당했던 사람이 좀 수고하더라도 마무리를 잘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오늘날 가정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느끼는 것입니다. 사회적 환경이 열악해서 그렇다고들 생각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으나. 저는 결혼식과 결혼생활의 함수관계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필자는 목사이기에 결혼주례의 경험이 많은 편이고. 또 가족이나 지인들의 결혼식을 많이 지켜보았습니다. 그 결과 피부로 느끼게 된 것은 결혼식 풍조가 많이 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의 눈에 따라. 같은 현실이라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는 경우를 보게 된다. 물이 반쯤 차있는 컵을 두고 ‘이제 겨우 반 잔 밖에 남지 않았네’라며 염려와 걱정부터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반잔이나 남았네’라며 다행스럽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반잔이라는 동일한 상황인데도 이처럼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는 것 같다.
함께 먹고 자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무리들을 가리켜 우리는 공동체라고 합니다. 공동체는 분명 한편으로는 불편합니다. 모임시간을 서로 지켜야 하고. 같이 밥을 먹어도 줄을 서야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나는 쉬고 싶지만. 시시콜콜 토론하는 자리에 끝날 때까지 같이 있어 줘야 합니다
삶이 피곤하고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남들은 다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일이 꼬이고 어려운 것 같고. 다들 웃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 같은 마음이 들 때가 있어요.
나에게는 프랑스인 조카사위가 있다. 인물도 좋고. 매너도 좋고. 다른 건 다 좋은데 우리나라 사람과 같이 일을 악착같이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내인 조카가 나름대로 고생을 한다. 이들의 대화 내용을 보면 이해가 될 법도 하다.
5월에는 여러 가지 행사들이 많다는 뜻으로 많을 다(多)자를 넣어서 ‘5月 입니多’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서 주간함양에 기고를 했었다. 그런데 꼭 1년이 지나서 이번 글 제목도 같은 제목으로 잡은 것은 5월을 보내면서 되돌아보아야 할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 어버이날을 전후로 해서 부모와 자녀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카톡을 통해 들어왔다. 그 중에서 하나를 소개한다. 제목은 “어느 아버지의 상속재산”이며 실화라고 한다.
사랑의 시작은 호감을 느끼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마음이 끌리고 시선이 가고 표현하고 싶어지는 것이 사랑의 첫 번째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시작 희망찬 함양’이란 슬로건 아래 행복한 함양을 이루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한 면이 없진 않지만 왠지 함양미달이란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늘 30만 내외 함양인을 노래하지만 실상은 4만 인구를 벗어나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와도 같이 서로 시기 질투 갈등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지내온 게 사실이다.